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색 작전 (문단 편집) === 소련군의 상황 === '''[[개판|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이러한 작전계획은 영국에 의해 소련에게 전달되었지만, 스탈린은 이런 경고를 ~~[[바르바로사 작전|저번에 그랬듯]]~~대수롭지 않게 무시한다. 심지어 세밀한 전투명령서가 실린 경비행기가 6월 19일 소련군 진지선 뒤에서 추락했을 때, 그것을 역정보로 치부했다. 그는 여전히 독일군의 주공은 모스크바라고 생각했지만, 전술했다시피 독일군의 공세는 남부로 쏠려 있었다. 이것이 비합리적인 결정인 것은 아니었다. 독일군의 중부 방면군은 여전히 강했고, 얼마없는 소련군의 예비전력은 모스크바로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아주 단순하게, 즉, 논제를 쓸데없이 꼬아서 생각하지 않는 한 청색 작전안은 나오기 힘든 안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스탈린의 "판단력"이 아니라 "의심병"이었다. 작전 계획서까지 얻어낸 시점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은 영국에 대한 그의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것은 이번에는 좀 지나친 것이었다. 그즈음 춘계공세가 시작되었다. 이는 레닌그라드로부터 흑해까지 이르는 수천킬로미터 전선의 7개 방면에서 동시 다발적인 공세를 펴서 독일군을 소련에서 몰아내야한다는 것이었다. 소련군 총사령관 대리인 주코프 대장과 총참모장 바실렙스키 중장은 모스크바 전투 반격 당시부터 "독일군은 아직 막강하고, 우리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고 계속 이를 말렸으나, 강철의 대원수는 히틀러 못지않게 자신의 판단을 고집하는지라 붉은 군대 고위 지휘관들은 실패가 예상되는 공세를 뻔히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3월부터 시작된 소련군의 춘계공세는 몇몇지역에서 어느정도의 성과를 냈고, 이는 스탈린을 고무시켰다. 스탈린은 더욱 대담해져서 5월부터 공세를 펴서 1941년 10월 이래로 점령되어 있는 하르코프를 탈환한다는 극히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웠다.[* 이와 함께 레닌그라드 방면에서는 [[안드레이 블라소프]] 중장이 지휘하는 소련군의 류반 공세가 4월부터 실시되었다.] 이를 지휘할 병력은 약 60만의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이었고, [[겨울전쟁]]의 맹장 [[세묜 티모셴코]] 원수 (전국방장관)와 정치장교 [[니키타 흐루쇼프]] 중장이 이 공세를 지휘하기로 되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